518 / 정태춘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날에 아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 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위에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에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같은 주검과 훈장 

너희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 까지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