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 김현식

앨범 : Sick And Bed (병상에서)

     
쓸쓸하게 미소지며 손을 흔들던
그대모습 내마음에 아직도 잊을수 없네

다정했던 그대와 나 지나간 추억은
내가슴에 남아있네 아직도 잊을수 없네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 나홀로 외로히 가네
둘이서 걷던 이길을 나홀로 걸어가네

초라한 내모습이 너무 싫어
그래도 난 어쩔수 없이
외로움에 그리움에 지난날을 생각해보네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 나홀로 외로히 가네
둘이서 걷던 이길을 나홀로 걸어가네

초라한 내모습이 너무 싫어
그래도 난 어쩔수 없이
외로움에 그리움에 지난날을 생각해보네




:::: 김 현 식 ::::.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1980년의 어두운 사회를 위안할 때 슬며시 발표된 김현식의 데뷔 앨범을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무려 5년 뒤 들국화가 화려하게 데뷔할 즈음 그의 두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 그의 이름은 바로 80년대 대중음악계의 가장 중대한 사건인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의 동의어가 될 채비를 완료했다.
그리고 그가 지병으로 이승을 마감하고 유작이 된 여섯번째 앨범이 요절의 신드롬과 함께 밀리언 셀러의 폭풍을 몰고 왔을 때 80년대 중후반의 이 신화는 저물었다.

대부분의 그의 노래가 록의 정통주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적어도 세계에 대한 태도의 측면에서는 완벽한 로커(rocker)였다. 그는 방송과 음반회사의 전횡을 무시해 버렸으며 대중의 소녀적 취향에 대해 일고의 배려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저 60년대 우드스탁의 끝없는 자유를 동경했다.

김현식에 대한 최대의 아쉬움은 그가 탁월한 록 보컬리스트였던 사실에 반해 뛰어난 싱어송라이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데뷔 앨범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제외하면 그의 작곡 능력은 2류에 머물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록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이러한 약점은 그의 탁월한 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송홍섭을 위시한 베테랑 세션들이 메꿔주었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앨범인 이 앨범에 이르러 그는 짧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자신의 삶의 내면을 일필휘지로 내보인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임박한 임종을 암시하는 가운데 흐르는 짧은 독백과 한 호흡으로 제시되는 그 특유의 상승하는 주제선율, 그리고 박청귀의 일렉트릭 기타와 호응하며 포효하듯이 일어서는 후렴의 사자후- 그 자신에 의한 이 넋두리 한 곡만으로 그가 펼쳤던 날개가 얼마나 많은 이의 감관을 휘감았는지를 알아차리는 데 충분하다.

그는 두번째 앨범의 어둠 그 별빛이나 세번째 앨범의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대표적인 곡에서 드러나듯이 블루스에 기인한 슬로 템포의 록의 비경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 여유로운 템포 속에서 그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소리꾼의 힘과 기교를 아로새겼으며, 그로부터 기인하는 보컬의 카리스마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게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김현식이 우리에게 각인됐던 그 시대는 랩을 제외한 서구의 모든 문법이 우리 대중음악의 골간을 장악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사조의 단순 수입상에 머물지 않고 그 자신만의, 어쩌면 나아가 우리의 숨결을 불어 넣고자 했다.
네번째 앨범의 우리네 인생이나 이 앨범의 도시의 밤과 같은 전형적인 로큰롤 곡에 면면히 흐르는, 무어라 규명할 수 없는 '향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향기 없는 꽃을 통해 이렇게 읊조리는 것이 아닐까? "겉이 화려할수록 진실 메말라 있고 / 겉이 화려할수록 향기 간 곳 없으니 / 향기 없는 꽃이여 / 그대의 진실은 은밀함에 있어 / 부러움 한 몸에 받을 수있다오..."

글출처 :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