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18


Sergey Rachmaninov (piano)
Leopold Stokowski (Conductor)
Philadelphia Orchestra

1929/04/13 Mono
Academy of Music, Philadelphia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작품 개설 및 배경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 걸작으로, 널리 연주되는 이 작품은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작곡된 명작이다.
그는 4곡의 피아노 협주곡 을 썼는데, 2번과 3번이 주로 연주되고 있다. 그는 26세 때부터 얼마동안 신경 쇠약에 걸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고통스런 생활을 했는데 친구의 권고에 따라 다알 박사의 이른바 암시 요법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박사는 매일 그를 자기의 진료소에서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 될 것이다"라는 암시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펜을 들어 제2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작품을 다알 박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바쳤다.

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은 1901년 10월27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되어 500루블의 상금도 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어서 일반인들도 쉽게 친숙해질수 있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1917년 혁명을 피해 파리로 망명하기 까지가 그의 작품 활동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파리에 망명한1년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주로 연주 활동을 하다가 1926년부터 다시 작곡을 시작해 (제4 피아노 협주곡), 관현악곡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 (교향곡 제3번)등을 작곡한다.

만년에 들어 스탈린이 1급 예술가로 대우하는 조건으로 그의 귀국을 권유했으나 라흐마니노프는 고국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 LA 비버리힐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 걸작으로, 널리 연주되는 이 작품은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작곡된 명작이다.
그는 4곡의 피아노 협주곡 을 썼는데, 2번과 3번이 주로 연주되고 있다. 그는 26세 때부터 얼마동안 신경 쇠약에 걸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고통스런 생활을 했는데 친구의 권고에 따라 다알 박사의 이른바 암시 요법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박사는 매일 그를 자기의 진료소에서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 될 것이다"라는 암시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펜을 들어 제2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작품을 다알 박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바쳤다.

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은 1901년 10월27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되어 500루블의 상금도 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어서 일반인들도 쉽게 친숙해질수 있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1917년 혁명을 피해 파리로 망명하기 까지가 그의 작품 활동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파리에 망명한1년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주로 연주 활동을 하다가 1926년부터 다시 작곡을 시작해 (제4 피아노 협주곡), 관현악곡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 (교향곡 제3번)등을 작곡한다.

만년에 들어 스탈린이 1급 예술가로 대우하는 조건으로 그의 귀국을 권유했으나 라흐마니노프는 고국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 LA 비버리힐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구성과 특징

1901년에 완성되어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제1번)과 쌍벽을 이룰만큼 많이 연주되고 있다.
섬세하게 다듬은 악상에 정서가 깊고, 천재 피아니스트답게 피아노의 효과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꿈을 꾸는 듯이 자유로운 형식의 환상곡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움과 서정성이 넘치는 악장들로 꾸며진 이 협주곡은 아름답고 풍부한 피아노 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제1악장 모데라토 C단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처음에 클라리넷, 파곳, 호른의 유니즌이 취주하는 힘찬 팡파르가 있으며, 스포르잔도의 전 합주로 마무리된 곳에서 피아노가 격렬하게 셋잇단음을 중심으로 한 카덴짜를 타기 시작한다.

이 음형은 제 1악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 그리이그의 협주곡의 처음 부분을 연상시킨다.
카덴자를 받고 이번에는 금관이 팡파르 음형을 연주하고, 이것과 피아노가 서로 경합하면서 진행한 후, 다시 다른 카덴자가 온다. 여기까지가 서주이며, 다음에 모데라토가 되어 바이올린이 약간 센티멘탈한 제 1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 주제는 다음에 피아노로 옮겨져, 쇼팽적인 펼침화음의 처리에 의해서 아름답게 전개해 간다.
이윽고 곡은 비바체로 되돌아 와서 스케르잔도의 페이지가 되어 피아노가 장식적으로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템포는 느리게 되어 관악기가 부드러운 가락을 곁들이고, 피아노가 마무리 지은 곳에서, 포코 메노 모소가 되어 제 1바이올린에 환상적인 제 2주제가 나타난다.
이 주제는 피아노의 섬세한 꾸밈 가운데서 발전하고, 서서히 가라앉아 제시부를 끝낸다.

그 후에 피아노의 힘찬 카덴짜가 들어와서 그대로의 기세로 전 악기가 등장하여 악보 제 삼의 악상에 의한 비바체의 전개부가 시작한다.
이것은 서주의 악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격렬하게 돌진하나, 이윽고 조용히 가라앉고, 다음에는 무거운 발걸음처럼 변한다.

그 뒤, 자유스런 전개가 계속하고 강한 고조로서 클라이맥스에 으르렀을 때, 호른이 팡파르 풍으로 세게 연주되어, 다른 악기와의 경합을 연출하며, 그것을 받아서 목관과 피아노의 구밈 음형이 모데라토로 다정하게 대화한다.
이것이 가라앉고, 호른의 독주에 제 1주제의 동기가 칸타빌레로 나타나 이하 제 1주제부의 요소에 의한 전개로 나아가, 차차 격렬함을 더하여, 드디어 비바체로 서주의 피아노의 카덴짜가 나타나 재현부가 된다.

재현부에서는 거의 제시부의 순서로 각 주제가 다루어지나, 피아노는 한층 더 눈부시게 된다.
그리하여 제 2주제부 다음에 비바체의 장대한 관현악의 악상이 게속하고, 그것이 악보 제 3으로 발전하여 전 합주로서 힘찬 마침을 하면, 독주 피아노의 큰 카덴짜가 된다.
카덴짜는 라흐마니노프의 비르투오조적인 성격을 단적으로 말하는 부분으로, 호탕하고 쾌활한 가운데서도 러시아적인 서정성을 충분히 감돌게 하고 있다. 그 뒤, 비바체의 코다로 빠르게 이 악장을 끝낸다.

제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E장조 4/4박자. 세도막 형식.
    극히 느린 템포의 가장 아름다운 악장인데 꿈을 보는 듯이 자유로운 형식의 환상곡이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그의 다성부의 음악에 대한 역량과 오케스트라의 취급에 대한 천재적인 성능을 과시한 악장이다.

마치 소리없이 내리는 비처럼 촉촉히 젖어드는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피아노 선율의 흐름이 섬세하고 내성적인 라흐마니노프의 걸작답게 멜랑콜리(Melancholi) 하면서도 정말 아름다운 악장이다.

제3악장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C단조 2/2박자.
    빠른 템포의 강렬하고 찬연한 악장인데 불규칙한 형식으로 테마가 2개 나타난다.
먼저 오케스트라의 서주로 시작하여 피아노가 중심 주제를 연주한다.

제2테마는 오보에와 비올라로 나타나는데 독주 피아노가 이를 반복한다.
발전부를 중심으로 한개의 선율이 몇개의 다른 악기로 뒤쫓아 얽혀지는 푸가를 거쳐 재현부를 지나 코다로 끝난다.(연주시간 약 26분)

글 출처 : 클래식 명곡 대사전
Sergei Vasilyevich Rachmaninov

노브고로트 출생.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우고 그 후 페테르부르크 및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A.실로티에게 피아노를, S.I.타네예프와 A.S.아렌스키에게 작곡을 배웠다.
재학 중에 이미 작곡을 시작하여 졸업하던 해인 1892년에는 가극 《알레코》와 피아노곡 《전주곡(내림마단조)》을 작곡하였다.

졸업 후에는 스크랴빈과 더불어 스베리오프에게 사사하였다. 1893년 평소 사숙하던 차이코프스키가 죽었을 때는 《위대한 예술가의 회상》을 썼다. 1899년 런던에서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얻고, 《피아노협주곡 제2번》(1901)으로 글린카상을 받았으며, 다시 드레스덴에서 교향시 《죽음의 새》(1906)를 작곡하였다.

1909년 미국에 건너가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 귀국, 1910∼1917년 모스크바극장 및 마린스키극장의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 연주활동과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패색이 짙어지자 모금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구국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 후 소련 당국의 권유로 귀국준비를 하던 중 발병하여 사망하였다.

20세기 초 가장 탁월한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었으며, 《피아노협주곡》 제2번 및 제3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낭만파의 마지막 작곡가이기도 하였다. 작풍은 ‘차이코프스키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일종의 회고적 경향을 띠고 있다. 작품으로는 피아노곡을 비롯하여 관현악곡 ·가곡 ·합창곡 ·오페라 등 많은 곡들을 남겼다.
음악적 경향으로는 국민악파 보다도, 차이코프스키의 모스크바 음악파와 접맥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바그너와 같이 모두 낭만주의에 속한다.

"저는 러시아 작곡가 입니다. 그리고 저를 낳은 이 나라는 저의 기질과 가치관등 다방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음악을 쓸 때, 저는 제 마음속에 있는 그것을 간결하고도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노력합니다." - 1941년 Sergei Rachmanin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