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Django Reinhardt


Django Reinhardt

기타와 집시스윙을 떠오르게 하는 장고 라인하르트!
MINOR Swing, Ou Es-Tu, Mon Amour, LA Mer등 대표곡만 엄선한 앨범이 음반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간다.

장고 라인하르트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되어 국내의 재즈 팬들에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수의 음악잡지와 음악관계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40장의 히스토리컬 앨범들 중 19곡을 선별하여 만든 이 앨범은 명반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두 손가락을 쓰지 못 했다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그 수식어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 컴필레이션 앨범에는 그라펠리의 바이올린 연주가 돋보이는 첫 번째 트랙인 'Minor Swing',
피할 수 없는 블랙 초콜렛 같은 세레나데 'Ou es-tu mon amour(내 사랑은 어디에)',
프랑스 샹송의 고전이자 명곡인 'La Mer(바다)', 그리고 재즈의 엑기스만 모아놓은 듯한 'Topsy'가 특히 주목할 만한 트랙들이다. 한 평론가가 평한대로 장고의 음악은 "유럽이고, 프랑스이지만 재즈이다".
그의 음악을 형성했던 모태가 재즈를 제외한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즉흥연주에 관대한 집시 음악이고 보면, 바람처럼 살다가 이슬처럼 지는 집시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다간 그에게 재즈는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숙명적인 재즈를 연주한 장고 라인하르트의 컴필레이션 앨범은 2007년의 명반 중에 하나임에 분명한 앨범이다.

  바이오그래피  
장고 라인하르트는 프랑스가 배출한 세계적인 집시스윙 기타리스트이다. 재즈의 본고장이 아닌 유럽에서 태어났지만, 집시적인 뜨거운 열정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재즈 뮤지션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1910년 벨기에 리베르쉬에서 태어난 장고 라인하르트는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밴조, 그리고 기타에 재능을 보였다. 선술집에서 부모들과 같이 연주하면서 밴조와 기타 테크닉을 익혔다.
1928년 두 개의 손가락을 잃어버리는 사고를 겪고, 형이 가져다 준 기타로 6개월동안 재활운동을 대신하며 연습에 혼신을 다 했다.
6개월 후 장고는 자신만의 독특한 주법을 익히고 최고의 연주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20살이 되던 해, 듀크 엘링톤, 조 베누티, 에디 랭
그리고 루이 암스트롱의 앨범을 발견하게 되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1931년 장고 라인하르트스테판 그라펠리와 '프랑스 핫 클럽 오중주단'을 결성하고 전 유럽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기에 이른다. 전쟁이 선포되고, 스테판 그라펠리는 런던으로 피신했고, 파리에 남은 장고는 프랑스를 방문한 미국 재즈 뮤지션인 멜 파우웰, 레이 맥킨리 등과 함께 연주했다.

1946년에는 듀크 엘링톤의 초대로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듀크 엘링톤 밴드와 함께 미국순회공연을 다니지만, 별다른 호응은 얻지 못한다. 미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온 장고는
1953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유럽에 머물면서 재즈씬에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낼 뿐, 은둔에 가깝게 행동하였다.
짧은 이력에도 불구하고 다작으로도 유명한 그의 작품들 중에는 단연 30년대의 Hot Club 시리즈가 돋보이며, 그의 음악경력의 거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Djangologie' 시리즈 역시 '장고맨'들의 수집목록에 올라있는 명품이기도 하다.
단순한 기타플레이어가 아닌, 'Minor Swing'같은 격렬한 스윙 명작들을 창조한 탁월한 작곡가로서 동시대 및 수대의 스윙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의 평생지기 파트너, 스테판 그라펠리와 함께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연주활동을 했던 그는 여러 대의 리듬기타, 베이스, 바이올린 등 '현악재즈'를 통해 오늘날 '컨츄리음악'의 생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장고는 집시의 독특한 음악적 뿌리와 스윙을 접목시켜 집시스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