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n & Dana  

Brown & Dana는 50년대 후반 Tufts 대학에서 Philadelphia출신의 Garett Brown과 Connecticut주 Old Lyme 출신 Al Dana 두 명의 청년이 학비보조를 위하여 결성하였다.

1961년에 이르러 학업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활동이 이어지는데 각종 대학교 행사와 Folk Festival을 통하여 서서히 인지도를 넓혔고, MGM Records사의 눈에 띄어 1963년에 이들의 유일작인 [It was a very good year]을 발표한다.

본 작에 실린곡 ‘The Ace Of Sorrow’가 국내에서는 아름답고 슬픈 노래의 대명사격으로 알려지면서 방송국과 음악 감상실, 음악다방에서 끊임없는 리퀘스트를 받게 되는 기현상이 생겨난다.” 위의 짤막한 내용이 현재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브라운 앤 다나”에 대한 정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정보의 바다라고 말하는 인터넷의 발전은 우리에게 지난 시대의 유산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었고, 때문에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더 이상 본인의 기억 속에 잠들어있는 해외 음악들의 정보에 목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브라운 앤 다나”의 경우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의 검색사이트 구글이나 최대의 음악 DB를 보유한 allmusicguide.com 에서도 국내에 알려진 단편적인 정보이상의 추가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구글의 검색 결과에서 “브라운 앤 다나”에 대한 대부분의 언급은 한국의 카페글이나 개인 블로그에 소개된 단편적인 정보뿐이며, 세계 최고의 경매사이트 ebay에서 초고가로 거래되는 LP는 어김없이 한국인들끼리의 과다경쟁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그들의 공식 홈페이지 메인 소개글에서 예외적으로 한국에서 그들의 앨범이 재발견되고 있음을 언급할 만큼 국내 올드팝 팬들과 포크 애호가들 사이에서 “브라운 앤 다나”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대체 무엇 때문인가? 어째서 1963년에 단 한 장의 음반을 발매하고 음악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들의 음반이 한국 애호가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사랑 받는 음반으로 자리잡았으며 아직 현재까지도 진행중인 것인가?

그 요인들 중에 한 가지는 수록곡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곡 ‘The Ace Of Sorrow’를 리메이크한 “트윈 폴리오”[슬픈운명]에서 찾을 수 있다.
어쩌면 “트윈 폴리오”라는 국내 포크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2명의 듀엣은 “브라운 앤 다나”를 벤치마킹 하였다고 하여도 무방할 만큼 데뷔 당시의 음악성향 자체가 닮아있다.

미성(美聲)의 두 남성으로 구성된 그룹멤버와 Cover Art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서정적인 멜로디와 그 바탕에 깔려있는 깊은 슬픔의 미학은 “슬픈운명” 뿐만 아니라 수록곡 전체를 비교하여 들어보게 되면 여실히 드러난다.
10년의 차이를 두고 발매되어 국내 포크음악 최고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트윈 폴리오”의 데뷔앨범과 함께 “브라운 앤 다나”는 음악감상실 문화의 중심에 서있었고, 당시 그 자리에서 그 앨범에 심취했던 청춘들은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서 그 곡을 들으며 떠올리는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로 “브라운 앤 다나”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보여진다.

수록곡들 중에서 ‘The Ace Of Sorrow’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적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타이틀곡’It Was A Very Good Year’, 그리고 ‘Santianno’ 같은 스페니쉬곡 외에도, 본 작에 수록된 모든 곡들은 기본적으로 Folk Revival Style과 Traditional Folk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며 국내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소식은 “브라운 앤 다나” 본인들 조차도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두 곡의 보너스 트랙이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63년에 Folk Music을 전문으로 하는 Radio 방송에 출연하여 펼친 두 곡의 Live Track이 그 주인공인데, 하물며 그 중 한 곡이 ‘The Ace Of Sorrow’를 한 자리를 차지하며 금번 reissue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티스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음반을 발매하는 즐거움을 알려준 Garrett Brown은 본인들의 유일작이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로 reissue 되는 것에 대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반가움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비록 그 보관상태가 너무도 좋지 않아 복원된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다는 코멘트를 전해왔으나, 오랜 시간 창고에서 잠들어 있던 Whinin' Boy의 리허설 버전을 찾아 제공하는 열의는 현재 영화계에서 펼치고 있는 정력적인 노장인의 초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듯 더욱 그 열정의 마음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음악계를 떠난 Garrett Brown은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 “샤이닝”에서 그 진가를 보였던 스테디캠(steadicam) 카메라의 최초 발명자로 촬영까지 담당하였으며 현재도 각종 문화 사업에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글 출처 : 뮤즈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