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 Johann Sebastian
Orchestral Suite No.2 in b minor BWV 1067

Pablo Casals (Conductor)
Marlboro Festival Orchestra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1685년 독일 중부 튀링겐 삼림지대의 소도시 아이제나흐에서 출생,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사촌형에게 오르간을 배우며 성장
17세기 후반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가를 탄생시킨 바흐의 가문은 200여 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하였다.
중부독일 튀링겐에 있는 빵집 주인으로 치터(Zither:현악기의 일종)의 애호가였다는 파이트(1619년 사망)가 바흐가문의 옛 조상이라 하며, 파이트의 장남 요하네스(1580?∼1626)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증조부가 된다. 유명한 거리의 악사였던 요하네스의 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하인리히는 모두 작곡가였으며 수편의 작품이 남아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의 조부는 그 중 차남인 크리스토프(1613∼61)이며, 그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다.
장남 게오르그 크리스토프는 바흐 가문에서는 처음으로 교회합창단장인 칸토르의 지위에 올랐으며, 쌍둥이 동생 요한 크리스토프와 요한 암브로지우스(1645∼95)는 거리의 악사가 되었다.
그리고 암브로지우스의 막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大바흐)이다. 그에게는 20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1710∼84), 차남 카를 필립 에마누엘(1714∼88),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1735∼82)의 3명은 음악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에마누엘과 크리스티안은 전자가 ‘함부르크의 바흐’, '베를린의 바흐’, 후자가 ‘밀라노의 바흐’ ‘런던의 바흐’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 유럽에서 활약하고 대바흐와 헨델을 정점으로 하는 바로크음악에서 하이든, 모차르트의 빈고전파로 음악사를 크게 전환시켰다.

요한 제바스티안은 중부 독일에 있는 루터파신앙의 중심지인 아이제나흐에서 거리의 악사인 요한 암브로지우스의 8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당숙 요한 크리스토프의 오르간 연주를 들으면서 성장하였다. 10세 때 양친을 여의고, 큰형 요한 크리스토프의 집에서 살면서 독일 오르간음악의 전통을 익히게 되었다.
큰형의 가족수가 늘어나자 자립을 해야 했던 바흐는 1700년 봄 북독일의 뤼네부르크로 가서 그 곳 고등학교 급비학생이 되어 루터파의 교육을 받으면서 교회의 합창단원으로서 북독일악파의 다양한 종교음악과 친숙하게 되었다.

0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바이마르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주자로 근무하면서 연주경험을 쌓았고, 3개월 후에는 아른슈타트의 교회 오르간 주자로 채용되었다.
오르간 주자는 오랫동안 희망하였던 자리였으므로 성능이 좋은 오르간이 설치된 새 직장에서 그는 열심히 오르간 연주법과 작곡법을 공부하였다. 그는 성가대를 훈련시키는 한편, 과거와 당시의 대가들의 작품을 필사·연구하여 점차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다.
유명한 라단조의 《토카타와 푸가》, 그리고 《여행을 떠나는 사랑하는 형에게 붙이는 카프리치오》 등이 이 시기에 쓴 작품들이다.

07년 6월 바흐는 아른슈타트에서 같은 중부독일의 뮐하우젠으로 옮겨, 성브라지우스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여기서도 그는 전과 같이 열심히 작곡하면서 교회칸타타에도 손을 댔으며,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 해 가을에 그는 사촌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결혼하였으며, 두 사람 사이에서 그 후 13년 동안에 7명의 자녀가 태어났는데, 그 중 빌헬름 프리데만과 카를 필립 에마누엘은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였다.

결혼한 이듬해 바흐는 다시 바이마르로 돌아가, 궁정예배당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약 10년간의 바이마르시절에 그는 오르간 주자로서 명성이 높아지고 작품도 점차 원숙해져 대가로서의 풍모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전주곡과 푸가》 《토카타》 그리고 《코랄전주곡》과 같은 오르간작품이었으며, 따라서 이 시기를 ‘오르간곡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한편 그는 교회칸타타를 거의 매달 한 곡씩 발표하였다. 또한 그는 궁정악단의 연주를 통해 비발디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악파의 음악을 알게 되었다.
바흐는 이탈리아의 협주양식이라는 새로운 작곡법에도 착안, 비발디의 협주곡을 오르간이나 쳄발로로 편곡하였다. 이것이 훗날 협주곡의 명작을 낳는 기초가 되었다.

17년 말, 그때까지 궁정의 집안싸움에 휘말리기도 하고, 또 희망하고 있던 궁정악장의 지위도 얻지 못하자, 바이마르궁정악단에 실증을 느끼게 된 바흐는 괴텐으로 이사하였다.
괴텐궁정악단의 지위는 새바람을 찾고 있던 바흐에게 가장 조건이 좋은 것이었으며, 그는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17인으로 구성된 궁정악단을 이끌어 가면서 자유롭게 작곡과 연주에 열중하였다.
좋은 환경과 풍족한 생활 속에서 창작에 대한 의욕이 높아진 그는 잇달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기악곡, 3개의 《바이올린협주곡》, 6곡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 등은 이 시기에 작곡된 것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밝은 빛으로 충만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흐의 사회적·가정적인 행복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20년에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가 죽자, 이듬해 35세의 바흐는 안나 막달레나를 새로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위하여 《막달레나를 위한 클라비어곡집》 (《프랑스모음곡》도 포함)을, 그리고 장남 프리데만을 위하여 《인벤션》을 작곡하였으며, 《평균율 클라비어곡집》도 이 시기에 정리된 것이다.
23년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교회의 칸토르에 취임하여 죽을 때까지 27년간을 교회음악가로 보내게 된다. 그의 임무는 기악과 성악의 개인지도와 합창단의 훈련, 그리고 이 도시의 교회음악을 작곡하는 일이었다.

성토마스교회와 성니콜라이교회에서는 일요일마다 칸타타가 연주되었고, 성금요일에는 수난곡이 불려졌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하나님은 견고한 성이로다》 등을 포함한 140곡 이상의 교회칸타타, 《마태오수난곡》을 포함한 몇 곡의 수난곡, 《마니피카트》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나단조미사》 등 많은 교회음악이 작곡되었다. 이 라이프치히시기를 ‘교회음악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옳지만, 사실상 그는 이 때 대학생의 연주단체를 위해 많은 세속적인 칸타타와 클라비어협주곡도 작곡하였고, 만년에는 대위법작법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는 《골트베르크변주곡》 《음악의 헌정》 《푸가의 기법》 등도 작곡하였다.
그러나 이 최후의 《푸가의 기법》은 급속히 쇠약해진 시력과 뇌졸중의 발작으로 미완성으로 끝났다. 결국 실명한 그는 7월 28일 오후, 복용해 온 약의 해독으로 급격한 전신 허약증세를 일으켜 별세, 성 요한교회의 묘지에 묻혔다.

글 출처 : 클래식 코리아
Orchestral Suite No.2 in b minor BWV 1067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은 네 곡이지만, 그 가운데서 플푸트와 현악 합주에 의한 2번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관현악 모음곡"이라는 명칭은 바흐가 아닌 후세의 사람들 이 붙인 것으로 당시에는 그저 서곡이라고 불렀던 듯하다. 왜냐하면 네 곡이 다 프랑스풍의 서곡을 1곡에 둔 몇 곡의 춤곡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춤곡의 프랑스 명칭으로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 궁정에서 세련되고 화려한 춤곡과 바흐를 낳아서 기른 독일의 풍토 속에서 발전해 온 민중적인 무용 음악이 여기에서 합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예술적인 깊이를 바흐는 이 관현악 모음곡에서 나타내고 있는데, 거기에 바흐의 위대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흐의 대부분의 기악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관현악 모음곡 제2번(다른 3곡도 포함 해서)의 정확한 작곡 연대를 알 수 없다. 아마도 쾨텐의 궁정 관현악단의 악장으로 일하던 이른바 쾨텐시절인 1717년부터 1723년의 사이에 작곡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시기에 바흐의 실내악 작품의 대부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제2번에서는 플루트의 활약이 두드 러졌는데, 이 시대의 이러한 곡에서는 연주자를 미리 염두에 두고 작곡하는 것이 보통이었 으므로 바흐의 주위에 매우 뛰어난 플루티스트가 있었던 것이 틀림 없다. 역시 초연의 연대는 불분명하다. 악기 편성은 플루트1, 바이올린 2부, 비올라 및 통주 저음이다.

  

구성과 특징

바흐 시대의 이름바 고전모음곡은 서곡으로 시작되는 몇 개의 춤곡의 집합이었다.
그 표준적인 형태는 ① 알르망드 ② 쿠랑트 ③ 사라방드 ④ 지그 등 4곡으로 되며, 그 사이에 적당히 다른 춤곡을 삽입했다. 예를 들어서 가보 트, 미뉴에트, 부레, 파스피에 등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춤곡이 아닌 에르(아리아) 따위도 사용했다. 그리하여 모음 곡은 점차 순수한 기악곡의 성격으로 이행했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은 쾨텐 시대(1717∼23)에 씌어졌다고 한다.
여기 수록된 제2번은 독주 플루트와 현악 합주를 위한 곡으로서 전체적 느낌은 협주곡 같은 인상을 풍긴다. 플루트는 때로 제1바이올린과 겹치기도 하는데 이 두악 기가 합쳐서 내는 부드러운 음색은 아주 독특하다. 전곡은 B단조로 통일되어 있다.

제1곡 <서곡>
프랑스풍 서곡으로 전체에 고전적인 장중함과 비창감이 떠돈다.
플루트가 때때로 현의 합주로부터 벗어나서 경쾌함을 준다. 중간부에 빠른 푸가가 삽입되는데, 여기에 서는 플푸트의 화려한 패시지가 들을 만하다. 플푸트와 현의 합주도 음색적인 대비 효과가 매우 훌륭하다.

느림-빠름-느림의 프랑스식 서곡 형식에 의하며 그라베의 서주와 알레그로의 중간부, 다시 그라베의 후주로써 이루어져 있다. 중간부는 바흐가 즐겨 쓰는 푸가의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제2곡 <론도>
플루트와 제1바이올린의 유니즌에 의한 우아한 론도 주제가 3회 되풀이된다.
경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정감을 가지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는 곡이다. 경쾌한 알레그로, 서두의 론도는 3회 나타나며 그 중간에 에피소드가 끼인다.

제3곡 <사라반드>
사라반드는 스페인에서 생겨난 3박자의 춤곡으로 느릿하고 장중한 아 취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춤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요풍이며, 플푸트와 제1바이올린의 유니즌에 의해서 제시된다. 느린 주제로 잇달아서 노래해 나가며 전체에 장중하고 비통한 기분을 빚어낸다.

원래 스페인 인이 그 지방에 산재한 무어인의 춤에서 받아들인 일종의 춤곡인데, 3/4 또는 2/3박자의 느리고 장중한 곡으로써 캐스터네츠에 맞춰서 춤추었다고 한다. 바흐의 사라방드는 느릿한 가요적 느낌이 든다.
안단테의 템포이며, 플루트는 시종 제1바이올린과 유니즌으로 연주하며 특별한 독주는 없다. 주제는 카논 수법으로 처리되어 있다.

제4곡 <부레>
부레는 프랑스에서 생겨난 빠른 템포의 춤곡이다.
여기에서는 제1부레와 제 2부레로 나누어지며, 제2부레를 끼고 제1부레가 되풀이된다. 다시 말해서 A-B-A라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제1부레는 생기가 넘치는 발랄한 곡상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대하여 제2부레는 플루트가 평온하게 노래한다. 그 콘트라스트가 선명하다.

주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춤으로서 유행했 다고 한다.
가보트가 그와 비슷한 춤곡 뮈제트에 이어지는 일이 많듯이 부레도 역시 트리오 구실을 하는 또 다른 부레에 이어지는 일이 많다. 2개의 부레 형식은 둘 다 단순한데 각각 2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그 부분은 되풀이된다. 제2부레의 다음에는 제1부레로 되돌아온다. 제2부레의 주선율은 플루트로 연주된다. 제1부레의 저음에는 같은 음형이 되풀이되면서 훌륭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제5곡 <폴로네즈>
폴로네즈는 16세기경부터 폴란드 궁정에서의 의식이나 귀족들의 참례 때의 음악으로서 사용된 것으로 후에 행진곡조에서 춤곡으로 바뀌어 유럽 각국의 궁정 무도회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바흐는 여기에서 폴로네즈 특유의 엑센트를 가진 주제를 사용하여 조금 느린 듯한 속도로 이 춤곡의 전아함을 강조했다. 중간부에 더블(일종의 변주)을 삽입하여 첫머리에서 나타나는 주제의 폴로네즈가 반복되는 구성인데, 더블이 또한 홀륭하다. 여기에서는 통주저음에 맞추어서 플루트가 화려한 명인의 솜씨를 전개하므로 전곡 가운데서 들을 만한 대목이라해도 좋을 것이다.

폴란드 기원의 춤곡인데, 16세기 말에 궁정으로 들어와서 귀족무도회의 행진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되었다. 바흐는 그것을 약간 느리게 모데라토의 속도로 다루고 있다. 중간부는 변주곡인데 플루트가 독주한다. 변주가 끝나면 다시 폴로네즈로 돌아온다.

제6곡 <미뉴에트>
미뉴에트는 프랑스에서 생겨난 춤곡이며 특히 루이14세의 궁정에서 대단히 유행했다.
전단과 후단의 2부로 나누어져 있어서 각각 반복된다. 플루트와 제1바이올린의 뉘앙스로써 연주되는데, 전체에 미뉴에트 본래의 전아한 아취보다는 오히려 애수미에 차 있다.

트리오 없이 전후 2단으로 된 단순 소박한 미뉴에트이다. 알레그레토의 빠르기인데, 바흐는 다음 악장을 돋보이기 위해 가끔 이런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제7곡 <바디네리>
바디네리는 춤고의 명칭이 아니라 농담이라든가 희롱, 익살맞는 짓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바흐는 이 곡을 마지막에 두어서 플루티스트 명인의 솜씨를 앙코르시키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플루트의 매력이 두드러지게 표출되고 있다. 전곡 가운데서 들을 만한 대목의 하나다.

프랑스어의 badinerie(희롱)에서 유래된 것인데 일정한 춤곡 이름은 아니다.
18세기 춤곡 에 자유로운 악곡으로써 채택되고 있다. 여기서는 플루트의 경쾌한 움직임을 충분히 발휘시키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이 빠른 패시지와 맞서 저음이 대조를 이루면서 나아가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
글 출처 : 명곡해설전집(세광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