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이고 음률적인 문장으로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춘 군상의 내-외면적 풍속을 그려 청년 독서층의 지지를 받았던 최인호 소설을 미국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그의 세번째 작품. 신인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최인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기존의 제작 체계와의 갈등 속에서 결국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비판적인 작가 의지를 불태운 하길종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젊은 층을 자극한다고 해서 영화 속의 대학교의 휴교 장면이나 직설적인 대사는 모조리 수정해야 했다.
원작 자체가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여 대학 생활을 담고 있지만, 이 단편적인 얘기들을 리드미컬하게 이끌어 나가면서 극적 분위기를 고양시켰다는 점은 확실히 연출자의 재능이다.
현실 고발적인 작가 정신이 군데군데 번뜩이고 있으며, 차분하고 치밀하게 엮어나갔다.
젊은이의 꿈과 현실의 간격이 빚는 고통을 애상적이고 시적으로 잘 묘사한 청춘물.
장발 단속을 하는 경관이 더 장발인 모순된 사회,
"근무 중 이상있습니다"하며 바쁜 상황에 상관에게 경례를 해야하는 경직된 체제,
70년대 초반의 우리 사회상이었다.
경찰 역을 한 배우는 지금은 작고한 코미디언 이기동씨였는데, 병태와 영철이 도망할 때 흐르는 곡이 송창식의 "왜 불러"이다.
항의하는 듯하는 듯한 반말투의 가사와 절규하는 듯한 곡조가 영화와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노래는 얼마 후에 '외색'이라는 이상한 이유로 금지 가요가 되었다.
연이은 긴급 조치로 수업 보다는 휴강이 많았던 그 시절,
"동해엔 고래 한 마리가 있어요, 예쁜 고래 한마리, 그걸 잡으로 떠날 것예요"라는 말과 함께 70년대에 만연했던 패배주의와 무력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의 바보들은 고래사냥을 목놓아 불렀고, 병태와 영자의 키스를 거둘어주던 헌병이 더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은 역시 암담한 시절일 수록 사랑은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