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anist


▷ 영화 줄거리 ◁

영혼을 움직이는 감동의 선율 전쟁의 한 가운데 그가 있다!
전세계를 울린 생애 최고의 감동!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한창 타올랐던 바로 그때, 스필만이 연주하던 라디오 방송국이 폭격을 당한다.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생활하던 스필만과 가족들은 얼마 가지 않아 나치 세력이 확장되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된다.
기차로 향하는 행렬 속에서, 평소 스필만의 능력에 호감을 가졌던 유태인 공안원이 그를 알아보고 제지한다.
가족을 죽음으로 내보내고 간신히 목숨만을 구한 스필만.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치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게 된다.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 속에서 마지막까지 생존을 지켜나가던 스필만.
나치의 세력이 확장될 수록 자신을 도와주던 몇몇의 사람마저 떠나자 완전히 혼자가 되어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끈질기게 생존을 유지한다.

어둠과 추위로 가득한 폐건물 속에서 먹을 거라곤 오래된 통조림 몇 개뿐인 은신생활 중, 스필만은 우연찮게 순찰을 돌던 독일 장교에게 발각되고 만다.
한눈에 유태인 도망자임을 눈치챈 독일 장교. 스필만에게 신분을 대라고 요구하자 스필만은 자신이 피아니스트였다고 말한다.
한동안의 침묵속에 스필만에게 연주를 명령하는 독일 장교. 어쩌면 지상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그 순간, 스필만은 온 영혼을 손끝에 실어 연주를 시작하는데.

“스필만은 2000년 7월 6일 8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바르샤바'에서 계속 살았다. 그 독일 장교의 이름은 ‘Wilm Hosenfeld’였으며 소비에트 포로 수용소에서 1952년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출연자 ◁

주연 
Adrien Brody :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역
Thomas Kretschmann : 
   빌름 호젠펠트 역
 
연출
Roman Polanski 

감독 Ronald Harwood 
각본 Ronald Harwood, 
       Roman Polanski 

원작 Wladyslaw Szpilman   
 
▷ 영화 이야기 ◁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의 자전적 회고록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진행되는 폴란드 게토 지역 한가운데에서 어느 유태인 피아니스트가 겪게 되는 지옥과도 같은 생사의 고비와 처철한 생존을 그린 감동의 실화극.

저자는 39년부터 45년까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강제거주지역)에서 살아남은 20여 명의 유태인 중 하나다. <쉰들러의 리스트>의 스필버그 감독에 이어, 유대계 출신의 유명 감독이자 유년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를 잃고 유태인 학살 현장을 직접 체험했던 로만 폴란스키가 다시 한번 사명감을 갖고 “몸서리 치는” 인종 학살의 현장을 재현하고 있다.

<쉰들러 리스트>가 휴머니즘 넘치는 드라마로 제작된 반면, 이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냉정한 시선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다. 2003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로만 폴란스키), 남우주연상(애드리언 브로디), 각색상 등 3개 부문 수상. 2002년 칸느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제작비 3500만 달러.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자서전 원작의 제목은 폴란드어로 ‘죽음의 도시’라고 한다.
실제의 스필만은 영화가 제작되기 이전 2000년 7월 6일 사망했다. 영화에서 역사 속의 폐허가 된 도시를 재현하는 장소로는 베를린에서 90킬로 정도 떨어진 주터보그와 베를린의 바벨스버그 스튜디오서 촬영하였다.
또 <쉰들러의 리스트>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폴란드 출신의 알란 스타스키(Allan Starski)가 미술을 맡아 당시를 재현하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크라코프에서 장소 캐스팅을 하면서 전쟁 중에 자신의 가족들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폴란스키 감독은 스필만과 비슷한 경험을 하였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 영화에 몰두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2002년 12월 초 개봉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을 위해 12월 27일 일부 상영관을 통해 제한적으로 상영된 뒤 차츰 확대 개봉되었다.
2002년 칸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비롯, 이미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이 증명하듯, 미국 개봉시 비평가들은 예외 없는 찬사를 선사하였다.
우선 시카고 트리뷴의 마이클 윌밍턴은 “<피아니스트>는 로만 폴란스키가 바로 이 영화를 위해 태어났을지도 모를 그런 영화다.”라고 했으며, 살롱닷컴의 찰스 테일러도 “<피아니스트>에서 폴란스키는 자신의 몰입과 집념의 근원에 맞서며 그가 오랫동안 말하고 싶었던 것을 털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가로막지 못하게 하고 있다.”라고 모든 공로를 감독에게 헌사했다.

뉴스위크의 데이빗 앤슨은 “스필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집으로 가면서 폴란스키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히틀러가 지휘하는 독일군이 폴란드 바르샤바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으로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6년 동안 지속된다.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역시 이 시기에 일어났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1933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까지 유대인들은 잔인함과 폭력 앞에서 사라져갔다. 당시 유럽에 살던 유대인의 80%인 575만 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인류의 사회 문화에 걸쳐 깊은 영향과 상처를 남겼다.

바르샤바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The Warsaw Ghetto).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 나치의 첫 번째 목표지역 중 하나는 바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였다.
바르샤바는 독일의 민족적, 경제적, 기타 다양한 이유로 시작한 전쟁에 있어 중요한 요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에 집중적인 공중폭격을 가한 뒤 1939년 9월 16일, 전면적으로 이 도시를 침공했다.
스테판 스타진스키 시장과 줄리앙 롬멜과 같은 인사들을 필두로 용감한 저항이 시도되었으나 독일은 그들의 전력과 수력공급로를 차단했다.
결국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받는 대가로 저항을 포기해야만 했다.

독일군은 10월 1일 도시를 완전 점령했다. 12일에 히틀러 정권은 철조망으로 403 헥타르의 게토 지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16일, 독일군은 도시 인구의 30%가까이 되는 36만 명의 유대인들을 이 지역에 강제거주시키기에 이른다.
점차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보내지고 곧 50만 명이 넘게 된다. 10만 명의 유대인은 이곳에서 기아와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다.

마침내 도시의 모든 유대인은 이 강제거주지로 몰린다. 그들은 파란별이 그려진 흰색완장을 반드시 착용해야했다.
또한 노역을 당해야했고 식량은 아주 조금씩 배급되었다. 나치군은 자기 기분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처럼 공포에 휩싸인 환경 속에서도 강제거주지역, 즉 게토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삶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게토 내에서 그들은 학교를 다녔고 정치적 활동도 조심스레 진행되었다.

1942년 7월, 8월에 거대한 이송이 시작되었다.
31만명에 가까운 게토의 유대인들은 트럭 혹은 배로 이동, 대부분이 트레블링카 실험 캠프로 옮겨졌다.
1943년 3월, 히틀러는 남아있는 유대인 처형을 위해 나치군을 보냈다. 같은 해 4월, 나치의 학살계획이 확실해지면서 처형당하는 자들은 급속히 늘어났다.

게토 지역은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사회주의자이자 시오니스트운동의 지도자 모데하이 아닐레빅이 이끈 폭동에 4만 명의 유대인이 참가했다.
그들 중 무장된 이들은 단지 200명뿐이었다. 이 처참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5월 16일까지 거의 한달 동안 주민들은 탱크와 화력을 앞세운 독일군에 강력하게 대항하였다. 이 싸움은 폴란드 저항군이나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군의 도움 없이 진행되었다. 이 전투에서 7천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고 3만 명의 생존자는 강제 이송되었다.
독일이 바르샤바를 포기한 1945년 1월, 이 도시에 살아남은 유대인은 불과 20여 명뿐이었다.
(영화 보도자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