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대하소설을 옮긴 러시아 대서사시.
보리스는 소련의 시인이며 소설가로서 릴케에 매료되고 '세익스피어 비극집'을 번역하는 등, 친 서방문학 쪽에 기울어 있어 숙청 대상이 되었던 문인이었다.
유리 지바고는 바로 파스테르나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특히 '닥터 지바고'는 보리스가 소련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노벨상 수상을 거부해야 했기 때문에 전세계에 물의를 일으켰던 화제작.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바로 이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는 오랜 절대주의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뀌어진다.
뒤에서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소개하지만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혁명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잘 모르고는 제대로 이해 할 수도 없고 원작의 맛을 살릴 수도 없다.
거장 데이비드 린 감독은 이 대하 소설 가운데 지바고와 라라 두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고 파샤, 코마르프스키 등 주변 인물로써 당시 러시아의 혼란을 심도 깊게 표현해 냈다.
따라서 지바고 역의 오마 샤리프 보다는 알렉 기네스나 로드 스타이거 등 쟁쟁한 조연 스타에 바로 린 감독의 사회적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지바고를 둘러싸고 있는 중요 세 인물을 잘 분석해 보면 당시 러시아 상황이 그대로 나온다.
따뜻하면서도 열정적인 라라가 인간의 정서적 본성이라면, 코마로프스키는 급진적 개혁을 의미하는 혁명 세력, 그리고 나레이터이자 증인역할을 하는 지바고의 이복형은 보수와 진보에 각각 한 발씩을 딛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경계인이다.
이들 중요 캐릭터를 원작에 금이 감 없이 잘 표출해 낸 것은 역시 린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
라라와 파샤가 언쟁을 하고 있는 방 밖 거리를 아무런 생각없이 그리고 앞으로 이 두 사람으로 인해 바뀌어질 자기 인생 항로에 대한 어떤 조짐도 발견하지 못한 채 걸어가고 있는 지바고의 모습이라든가,
라스트 씬에서 스탈린 초상화가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 거리에 라라의 사라져가는 뒷모습이 보이게 해 국가와 한 개인의 함수 관계를 암암리에 묘사한 것 등은 출중한 이미지 메이킹이다.
이영화를 잊지 못하게 하는 데 또 한 몫을 한것은 모리스 자르의 뛰어난 음악 라라의 테마 뮤직, 일명 'Somewhere My Love'는 영화 음악의 백미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눈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황량하면서도 서정넘치는 화면에 보여준 프레드릭 영의 촬영 솜씨도 일품.
라라 역의 줄리 크리스티의 연기가 호평을 받았고, (그녀는 이해 '다링'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찰리 채플린의 딸인 제럴딘 채플린도 토냐 역에 어울린 캐스팅이었다.
1965년 아카데미 촬영, 작곡, 각본, 의상, 미술, 감독, 남우주연, 각본, 작곡상을 수상했다.
▷ 줄거리 ◁
의사이며 시인인 유리 지바고는 명문 태생으로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
어릴 때 양친을 잃는 바람에 자기를 길러준 은사의 딸 토냐와 결혼한다.
당시 러시아는 정치적 혼란기. 1차 대전의 대혼란을 예고하는 듯한 바람이 거세게 일고있었다.
한편 라라는 학생인 파샤와 사랑하는 사이, 파샤는 과격파로 거리로 뛰어 나간다.
라라에게는 파샤 외에 또 한명의 남자가 있었다.
코마로프스키란 변호사인데 라라와는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눈과 추위가 세상에 가득한 크리스마스날 지바고와 부인 토냐는 명사들이 모인 성탄 무도회에 참석한다.
그런데 갑자기 총성이 들리더니 변호사 코마로프시키가 쓰러진다.
황급히 그의 곁으로 달려가는 지바고, 생명엔 이상이 없었다.
그를 저격한 사람은 라라였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찰거머리인 코마로프스키로부터 벗어나고자 총을 쏜 것이다.
1914년 드디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지바고는 정숙한 부인 토냐를 남겨두고 군의관으로 참전하게 된다.
눈밭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며 심약한 지바고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바고는 코마로프스키를 쏘았던 맹렬 여성 라라를 전쟁터에서 만나게 된다.
그녀는 간호원으로 종군 중이었다. 남자보다도 더 굳세게 버티어 나가고 있는 라라를 보면서 지바고는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
부인 토냐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그녀에겐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져든다. 그 추운 시베리아 벌판에서 따뜻한 체온 이상 위로가 되는 것은 없었다.
전쟁의 와중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의 회오리, 지바고와 라라는 그 혼돈을 피해 한적한 시골로 숨어든다.
겹겹이 성애와 눈발로 덮혀져 있있는 창문을 통해 촛불 아래 시를 쓰고 있는 지바고의 모습.
전쟁에서 느껴졌던 인간의 모습들이 그의 펜을 들게 하고 시가 되어 흐른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라라를 철저히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코마로프스키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라라는 강제로 끌려가고 지바고는 영문도 모른채 체포되어 끝없이 끌려 간다.
몰아치는 눈보라,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점점이 흩어진 대열에 끼어 지바고는 마치 인생항로를 더듬 듯 혹한의 벌판을 헤맨다.
그후 8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모스크바 거리는 온통 거대한 스탈린 초상화로 가득 메워져있다.
전차를 타고 가던 지바고는 차창 밖으로 문득 라라의 모습을 발견한다. 급히 전차를 내리는 지바고.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심장 마비를 일으켜 길 위에 쓰러지고 만다.
지바고의 이복 형은 지바고와 라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듯한 소녀와 함께 일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작업 공장으로 사라지며 영화는 끝을 고한다.
▷ 영화 음악과 작곡가에 관한 이야기 ◁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한 '닥터 지바고'에서 음악을 담당한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자르는 기타와 비슷한 러시아의 민속 현악기 발라라이카가 멜로디를 연주하는 식의 편곡으로 '라라의 테마'를 선보였다.
또 이곡은 영화 전편에 각기 다른 감각의 편곡으로 흘러 감동적인 멜로디는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게 되었다.
프랑스의 리용에서 태생(1924.9.13일) 모리스는 16세 때 파리 음악원에 진학했고,
그 후 명문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는 음악원 재학시 음악원의 관현악단 멤버였고, 지휘법과 작곡법 및 전자 음악까지도 두루 섭렵한 수재다.
그 후에는 파리 국립극장의 음악 책임자로 활동하다 51년부터 단편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면서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모리스는 단편영화와 도큐멘터리의 음악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61년 '시벨의 일요일'(Cybele Ou Les Dimanches De Ville D'avray)에서부터 극영화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모리스는 헐리우드로 진출하여 61년 '사상 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과 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의 음악으로 스케일이 큰 대작 영화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모리스 영화 음악의 특징은 타악기를 유효 적절하게 구사하는데 있다.
그의 타악기 활용 솜씨는 파리 음악원 재학 시 지도 교수였던 아르튀르 오네겔의 영향 때문이다. 모리스는 음악원 재학시 지휘법과 작곡법, 전자 음악 등을 두루 관심있게 익혀나갔으나 전공은 타악기였다.
작곡가들은 자신이 전공한 악기를 편곡 과정에서 즐겨 사용하는 버릇이 있게 마련인데, 그의 경우는 드럼과 팀파니는 물론 캐스터네츠/그로켄/마림바/첼리스타 같은 타악기를 즐겨 활용하고 있다. 그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관심있게 들어보면 그 특징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타악기는 가장 오래된 원시적 악기이면서 현대 음악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대부분의 악기가 전자 악기화 하는 현재의 추세속에서도 타악기만은 인간의 손으로 두드려야 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영원히 인간적인 악기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모리스는 확실히 강점을 지니고 있다.
모리스의 대표작으로는 역시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꼽힌다.
팀파니의 사운드가 점점 크레센도되면서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환되는 스케일이 큰 감동적인 음악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
모리스는 타악기뿐 아니라 기타와 하프 등 손으로 뜯는 악기도 곧잘 활용한다. 확실히 그는 손으로 두드리거나 뜯어야 소리가 나는 악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닥터 지바고'에서 현악기인 발라라이카를 사용한 것도 그런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의 하나이다.
물론 '닥터 지바고'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모리스와 어울리도록 러시아 민속악기를 사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발라라이카로 러시아의 음악적 특성을 살리려고 한 것은 아니므로 그는 확실히 손으로 연주하는, 즉 인간적인 소리를 느낄 수 있는 악기를 사랑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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