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

어느 장르의 음악과 만나건, 그녀가 노래하면 온전히 한영애의 것이 된다.
가장 흑인적인 음악인 블루스를 해도, 60년대 말의 백인 히피문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포크를 부를 때에도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항상 한영애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갖게 된다.
가슴속 어느 곳에 응어리진 한스러움을 토해내는 것과 같은 그녀의 목소리. 듣는 이들을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것과 같은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노래에는 그런 힘이 있다.
선사시대 어느 여사제의 주문과도 같이, 지친 영혼을 위무하는 그런 힘이다.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갖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그런 한스러운 정서를, 그녀는 노래로 불러내고 다시 노래로 위로한다. 그것이 어떤 음악과 만나건 그녀의 노래가 가장 한국적이면서, 또한 가장 세계적이 되는 이유이다.

그런 한영애가 해방 전후, 그리고 6.25 직후까지의 우리 음악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니다.
"그 시절의 음악들. 우리의 불행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잠시라도 위로를 던져주었던 그 음악들이야말로 우리네 정서의 뿌리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영영 잊혀질 지도 모르는 그 노래들을 기억 속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우리를 돌아보는 일은, 한영애가 해야 한다." 라고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양 싶다.

윤심덕의 드라마틱한 삶으로 더욱 유명한 `사의 찬미`, 일제시대의 대표적인 곡 `강남달`로부터 시작해서, `황성옛터`, `굳세어라 금순아`, `목포의 눈물` 등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음악들과 함께, 이 음반을 통해 처음 2절까지 완벽하게 녹음된 `부용산`, 지금도 애창되는 정감 어린 동요인 `따오기` 등 1925년부터 1953년까지의 다채로운 노래들이 선곡에 포함되었다. 특히 복각음반을 통해 재발굴한 `꽃을잡고`는 원곡이 가진 아방가르드한 매력을 그대로 잘 살려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흥겨운 스카 리듬을 도입한 `선창`이 귀에 쉽게 들어오며, `오동나무`에는 버블 시스터즈, `강남달`에는 어어부프로젝트의 백진이 각각 featuring 하여 앨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과감하게 새로운 해석을 도입한 다른 곡들과는 달리 `목포의 눈물`과 `타향살이`는 원곡 그대로의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앨범의 하일라이트는 `애수의 소야곡`과 `외로운 가로등`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오래된 멜로디를 모던한 감각으로 풀어낸 `애수의 소야곡`은 원곡과는 달리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느낌을 준다. `외로운 가로등`은 블루지한 기타와 재즈의 느낌을 주는 클라리넷, 그리고 잘 정돈된 스트링 어레인지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이 두 곡에서 한영애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