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4집 (1988/서라벌레코드)

짧은 인생역정 동안의 간난고초와 탐닉의 흔적을 고스란히 새겨오며 시기적으로 급격한 변모를 보였던 김현식의 목소리(들) 가운데 남은 이들 뇌리에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이 아마 이 시절의 강렬한 허스키 보이스가 아닐까.

1987년 대마초 파동 이후 타의에 의한 공백기를 딛고 돌아온 그는 비록 미청년의 면모는 잃었으나 목소리의 거친 기운이 강렬함에 깊이와 매력을 더해주는 시기를 맞았고, 그 절정의 순간들이 신촌블루스 2집과 이 앨범에 담겨있다.

백 밴드 라기보다 오히려 음악적 동반자였던 봄·여름·가을·겨울과 헤어진 후 만들어진 이 앨범에서는 송병준, 이정선, 장기호, 유재하 등의 곡과 자작곡 두 곡이 실렸고, 박청귀 등 세션 뮤지션들의 도움과 송홍섭 편곡을 거쳐 이병우의 프로듀싱이 앨범을 마무리했다.

김현식 특유의 발라드 <언제나 그대 내 곁에>, <사랑할 수 없어>도 새삼 감동적이며, 신촌블루스의 이정선이 제공한 <한밤중에>, <우리네 인생> 모두 훌륭하지만 특히 후자는 흥겹게 출렁이는 생의 낙관 혹은 달관 으로서 유독 돋보인다.

유재하 버전과 대조되는 김현식의 <그대 내 품에>는 꺼칠한 남자 목소리의 힘과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과시하고 있다. 김현식 이전에 김현식 없고 김현식 이후에 김현식 없다.   (조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