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3/삶의 문화/한국음반)
모던 포크의 감각적 수용자로 시작하여 이제는 수단으로 포크를 수용한 정태춘은 민중운동의 통일되고 확실한 목소리가 사라져가고 있는 이즈음에 다시 재조명되어 마땅하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노래한 가수가 아니다.
그가 엘리트 지식인들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는 이웃의 삶을 이성이 아닌 가슴으로 가감없이 노래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제도권의 박해로 그의 음반들은 '불법'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뒤돌아 볼 때 <아! 대한민국>과 <92년 장마, 종로에서> 두 음반의 합법화 결정은 그의 선택이 옳았으며 그의 투쟁이 조그마한 승리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죽음>과 같은 낮게 읊조리는 절규가 가득 찬 <아! 대한민국>과는 달리 본인도 밝히듯 여전히 그 메시지는 강렬하지만 보다 일상적인 정서에 가까이한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그의 향토적인 초기작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저 들에 불을 놓아>와 같은 강렬한 어조의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아내이자 동지인 박은옥과 함께 한 이 음반은 사회성 짙은 모던 포크의 걸작으로, 민중가요의 제도권에 대한 소중한 승리로서 기억되고 있다.
(황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