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블루스 2집 (1989/서라벌레코드)
한국적 블루스를 지향하는 베테랑 뮤지션들이 이미 한차례 공동작업을 거쳐 얼마간 여유롭게 그러나 의욕충만하게 덤벼들었다는 것, 팀의 주축인 엄인호와 이정선의 다소 다른 취향이 블루스 록쪽에서 타협점을 찾았으며 브래스 섹션이 사운드를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등등의 장황한 설명을 한순간 무색하게 만드는 뭔가가 이 앨범에는 있다.

그것은 엄인호와 노래를 주고 받는 블루스 메들리 <바람인가 빗속에서>로 등장하여 덜 상한 목소리를 실컷 내지르며 <골목길>에서 불멸의 한순간을 남긴 고 김현식의 후광일 수도 있고, 한영애가 비워둔 여성 보컬의 자리를 별 아쉬움 없이 메운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정서용일 수도 있으며, 김현식과의 인연으로 참여한 봄·여름·가을·겨울의 보사노바곡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의 쓸쓸하지만 단정한 면모일지도 모르고, 한영애 2집에도 실렸던 <루씰>의 작곡자 엄인호 버전의 색다른 맛일 수도 있다.

아니, 이 모든 걸 합치고 미쳐 언급하지 못한 것까지 더한 대도 잡지 못할 그것은 90년대 이전 한국 대중음악의 (상대적) 풍요로움과 가능성이 결국 마땅한 계승자를 찾지 못하고 그대로 소진되어 버린 데 사무치는 회한일지도 모르겠다.
(조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