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4집 (1994/킹레코드)

언젠가 대학교의 콘서트에서 그가 당시 방송순위 1~2위를 다투던 <사랑했지만>을 불러달라는 팬들의 아우성을 거절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무척 난감해 하며 "그 곡은 잘못 불렀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그런 게 아닙니다"라며 그 원성(?)을 끝내 외면했다.

그는 이미 <나의 노래>를 발표한 3집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모두가 투쟁하던 80년대에 연가를 부르던 (그리하여 노·찾·사 출신의 변절이라는 평가를 듣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연가를 부르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90년대에 오히려 <일어나>, <자유롭게>가 담긴 이 앨범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그 곡들보다 <사랑했지만>으로 규정되는 그의 예전 모습들을 더 원하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바뀌어 있었다. 많은 진지한 스타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박제시키려는 팬들의 요구에 괴로워했고, 그들이 밟은 전철을 따라 요절로 자신의 생을 마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자살한 한 아이돌 스타에게 초점을 맞춘 언론과 대중은 죽은 그를 두 번 외면했다.

커트 코베인을 매년 추모하지만 그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음악인들, 유재하 트리뷰트는 만들어도 김광석 트리뷰트는 만들지 않는 음악인들도 그 공범에 속할지 모른다.
(신승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