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한대수는 ‘행복의 나라’와 ‘물 좀 주소’로 대변되는 ‘추억의 가수’로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뮤지션이다.
그는 자기 반복을 일삼거나 히트곡 하나로 정체성이 설명되는 정형화된 가수 또는 뮤지션과는 거리가 먼, 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더없이 진보적인 의식을 지닌 싱어 송 라이터이다.
11장의 디스코그래피에 포함되는 모든 앨범들에 담긴 서로 다른 고유한 색채와 향기, 그리고 ‘소리’에 대한 다채로운 시도는 그의 치열했던 삶과 틀에 갇히지 않은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그의 음악은 분명 당대의 여느 포크 가수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표출해왔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성기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목소리와, 깊은 은유와 통쾌한 직설법과 시적 상상으로 가득한 탁월한 노랫말, 기존 가요의 멜로디 전개 방식과는 사뭇 다른 곡 구성, 카주와 목탁, 톱 등 우리에게 생소한 악기 또는 악기가 아닌 소품들을 이용한 독특한 사운드 메이킹 등은 그의 작품들에 뚜렷한 정체성을 부여해준 요소들이었다.

김민기가 한국 모던 포크의 신화라면 한대수는 개척자였다.
1968년 귀국하여 국내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후 6년만에 내놓은 이 음반에는 그의 초기 대표곡들이 실려있다.
<물 좀 주소!>에서 "물 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바람과 나>에서 "야! 자유의 바람/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임", <행복의 나라>에서 "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더 느껴보자"를 외쳤던 그는 자유와 이상을 꿈꾸는 몽상가였다.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밥 딜런 정도의 위상을 획득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땅에서 그는 날개 꺾인 한 마리 날짐승이었다.
무한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당시 단연 빛나는 존재였지만 활동의 제한을 받는 뮤지션 이었고, 어처구니없게도 이 데뷔 음반은 금지음반이 되었다.
정성조 쿼텟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바람과 나> 같은 곡에서는 당시 흔히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의 세션을 들려주고 있고, 나중에 해금되어 정식으로 재발매된 음반에는 <하루 아침>의 오리지널 버전이 실려 있다. (박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