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촌장 푸른 돛 (1986/서라벌레코드)
하덕규(v, g, har), 함춘호(g)


여린 듯하지만 날카로운 비수를 폐부 깊숙이 감춘 시인과 촌장의 목소리는 들국화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출한 80년대 젊음의 뒤틀린 희망가였다.

시인과 촌장은 조동진을 수장으로 하는 70년대 모던 포크의 맥과 닿아 있지만 하덕규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 (손수 그린 파스텔화 앨범 재킷과 <얼음 무지개>같은 곡에서 잘 드러나는)과 세상에 대한 치열한 시각(<매>, <비둘기 안녕>), 그리고 함춘호의 전통적이지 않은 기타 플레이 등으로 일반적인 시각의 포크 듀오의 이미지에서 멀리 벗어나 있던 이들이었다(이 시절 누가 <고양이>와 같은 곡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미 <푸른 돛> 이전에 <내 고향 동해바다>, <재회> (남궁옥분이 불렀던 그 곡) 등이 실린 앨범을 발표했던 하덕규는 함춘호와 짝을 이룬 이 앨범에서 '아무래도 친구 푸른돛을 올려야 할까봐 (<푸른 돛>)' 라고 나즈막히 얘기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풍경>)'을 희망했다.

따스한 감성의 <사랑일기>와 <우리노래 전시회 1>에 실렸던 <비둘기에게>가 주로 알려 졌지만 지독한 연가 <진달래>와 자아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담긴 <떠나가지 마 비둘기>, <비둘기 안영> 등의 여운은 당시의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을 부여했다. (김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