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
듣는 이의 마음 속까지 헤집어 놓을 정도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지닌 전인권.
그의 이름은 흔히 어두운 터널로 표현되는 80년대를 지나온 청장년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들 자신의 젊은 시절 열정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
그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로 회자되는 그룹 들국화의 리드 싱어다.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
포효하는 사자를 연상시키는 무대 위 그의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를 가진, 말이 거의 없는 소년이 바로 그였다.
뿐만 아니라 노래보다는 미술에 더 관심이 많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등학교를
그만둘 정도. 그런 그가 음악으로 삶의 방향을 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작은 형 덕분에 팝송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의 재미를 알게 된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음악인으로서의
길임을 깨닫고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한다.
이후 기타 하나에 의지해 음악인들 사이에 명인으로 소문난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음악 공부에 매진, 잠자고 있던 음악적 감성들을 깨워나가기 시작하는
한편, 밤무대에서 노래와 연주로 생계비를 조달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이런 생활을 자그마치 10여년 동안 이어나가면서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음악, 그 품 안에서 스스로를 단련시켜 나갔다.
그런 가운데 만난 음악적 동지들(최성원, 허성욱)과 함께 결성하게 된 그룹이
바로 들국화.
1986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룹 들국화의 리드 싱어로,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이 가진 음악적 개성을 한껏 발휘하기 시작한다.
처음 이들이 앨범을 내고 활동을 시작했을 때 방송 등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긴 고수 머리와 나팔 바지 차림의 그들은 소위 말하는 국민 정서에
거슬리는 그룹이었으며 전인권의 거친 보컬도 방송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에서의 반응은 달랐다. 세련된 곡 편성과 연주,
전인권의 거칠면서도 시원스런 보컬은 당시 젊은이들의 발길을 붙들어 놓기에
충분했던 것. '가요'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팝 매니아들까지도 상업적인
대중가요와는 분명 맥을 달리하는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한국적인 록의 전형을 만들어낸 그룹으로, 한국에 언더그라운드 붐을
일으킨 주역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 록의 기둥으로 자리잡은 그룹 들국화.
그리고 그 한 가운데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전인권.
하지만 너무나 개성이 뚜렷했던 이들의 한 지붕 아래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7년 그룹 해체를 선언한 후 고별 콘서트를 가진 뒤 전인권은 들국화 멤버였던
허성욱과 함께 [추억 들국화]('87)를 발표하는데 여기서 그는 싱어 송라이터로서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며 '노래만 잘 하는 가수'라는 일부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후 그는 솔로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전인권
구락부라는 라이브 클럽을 운영하면서 꾸준히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걸어나갔으며
97년 민재현, 이건태 등과 함께 들국화3을 결성하여 들국화 시절의 음악을 꽃피워
보려 했으나 그의 의도 만큼 반응을 끌어내진 못했다.
이즈음 그의 음악 활동에 치명타가 된 것은 바로 히로뽕.
그 자신이 나아가야 할 음악적 행로를 두고 고민하던 중 동료 가수와 함께 히로뽕을
접하게 됨으로써 그의 음악 인생에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게 된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구속, 석방이 거듭돼 일각에서는 그의 음악적 생명이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는 스스로를 가다듬기 위해 수양을 하고
창을 배우는 등 자신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98년 기타리스트 한상원과 함께 발표한
앨범이다. 이 앨범은 그 자신이 살아있다는 선언이기도 했으며 앞으로의 음악적 행
보를 기대케하는 작품이었다.
어느 잡지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생활이 '음악의 맛을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간 새로운 음악적 충전을 가졌던 그는 같은 해, 동료 허성욱의 사망을
계기로 다시 뭉친 들국화 멤버들과 함께 재결성 무대를 갖는다.
이 무대를 통해 자신
들의 인기가 여전함을 확인한 그는 들국화 원년 멤버들과 함께 앨범 준비에 들어가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재개했으나 또다시 히로뽕 사건에 연루돼 구속됨으로써 들국화의
새로운 음반을 기대하던 팬들을 실망시켰다.
하지만 문화기획가 김민기, 소설가 박상우,
하경란 등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아끼는 문화예술인들의 탄원과 그의 결백함을 알게 된
팬들의 탄원서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는 다시 대중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는 확실히 노래를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노래꾼이다.
음악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외곬으로 평탄치만은 않은 음악의 길을 가는 한국의
가객. 여과되지 않은 솔직함이 묻어나는 그의 노래들이 영원하기를, 그 노래에 활력을
주는 그의 음악 생명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