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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ora Hibari / 미소라 히바리

일본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는 1937년 5월29일 요코하마시(橫浜市)에서 출생하여 9세의 어린 나이부터 연예활동을 시작, 11세부터배우로 본격 활동을 하게 된다.

본명은 가토 가즈에(加藤和枝).
학력은 세이카가쿠잉 고교(精華學園高校) 출신이라는데 확실치는 않다고 하는가 하면, 아버지인 카토 소키치(加藤增吉)가 한국인이라는 유력한 설이 있다.

가요는 12세 때에 부른 <가빠 부기우기(河童ブギウギ)>가 최초이며,
대표곡으로는 <야와라(柔)>,<미다레가미(みだれ髮)> 등이 있다. 이외에도 그녀가 27세 되던 해부터는 TBS-TV가 그녀의 이름을 딴<미소라히바리 극장>이란 프로도 만들었으며, NHK 홍백가요제전에 16년 계속 출연하는 기록도 갖고 있다.

1987년(50세) 4월 양다리 대퇴골 골절 및 만성간염으로 입원, 8월에 퇴원, 10월에 연예계복귀, 1988년 4월 도쿄돔(東京ド-ムで)에서 성공적인 재기콘서트를 가졌다. 이때의 관람객이 5만명이었다고 한다.

1989년 6월29일 간질성 폐렴으로 죽기 3개월 전까지도 연예활동을 한 그녀는 1989년 6월24일에 사망했다.
죽은 후(7월)에 레코드대상, 특별영예가수상과, 여성 최초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하는 52년 생애에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미소라 히바리.
그녀의 죽음을 일본의 모든 방송국은 임시뉴스로 전국 방방곡곡에 알렸고, 마치 국장(國葬)을 지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일본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런 존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