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대전집 - 23집
수궁가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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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가 [水宮歌]
‘토끼타령’, ‘별주부전’, ‘토별가’라고도 하는 수궁가의 이야기는 옛 불교경전에 나오는 ‘원숭이와 악어’나『삼국사기』에 보이는 ‘자라와 잔나비’와 같은 이야기들과 깊은 관계가 있을 터인데, 조선왕조 때에 ‘자라와 토끼’의 설화로 바뀌어 판소리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가지 동물들이 갖가지 인간성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수궁가는 인간들의 세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야기를 판소리로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설정된 여러 인간상의 적나라한 표현은 바로 계산된 연출행위를 반영하고 수궁가가 근원 설화를 넘어선 작가의 의식 세계를 보여주는 셈이다. 흔히 수궁가의 주제를 논할 때에는 자라의 충성심과 토끼의 기지로 표현되는 양면성을 내세우지만 사실 이 주제는 서로 모순되는 성격이다. 그러므로 수궁가의 이야기를 별주부전이라고 해서 자라에 초점을 맞추면 충성심이 주제로 해석될 수 있으나, 토끼전이라는 별칭으로 토끼에 초점을 맞추면 오히려 불충의 기지가 주제일 것이다. 역대의 명창들이 수궁가를 많이 불렀다고 하나, 20세기에 접어들어 판소리가 쇠퇴하자 많은 유파의 수궁가가 전승되지 못했다.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수궁가 유파는 보통 송만갑바디, 유성준바디, 박초월바디, 정응민바디, 김연수바디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모음곡의 수궁가는 박초월바디로서 박초월 명창의 소리를 직접 올린 곡이다. 수궁가는 그 무대가 ‘수궁’ ‘육지’ ‘수궁’ ‘육지’로 네 번 바뀌어 나오는데 음악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두 번째로 수궁이 무대가 된 부분, 곧 토끼가 용왕을 속이고 육지로 유유히 탈출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수궁가의 눈으로 토끼가 배 갈라라하고 호령하는 대목부터 육지에 나와 자라에게 욕하는 대목까지를 꼽는다. 특히 토끼가 자라에게 욕하는 대목은 ‘경드름’이라고 말하는 독특한 음악어법으로 짜여져 있다. ‘경드름’이란 경조라고도 하는데 서울 소리의 스타일을 의미한다. 이것은 본디 19세기 초에 활약한 여덟 명창에 들었던 염계달의 더늠(특징적 음악어법)으로 전해오는데, 대개 중모리 장단으로 짜여져 있고 즐겁고 경쾌하게 라는 악상기호의 의미가 있다. 대체로 판소리의 눈이 이야기의 극적 클라이맥스와는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데에 비해서 수궁가는 극적 클라이맥스가 바로 판소리의 눈으로 설정된 점이 특이하다. 이 점은 수궁가를 판소리로 재창조한 작곡가의 속 깊은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이다. 곧 수궁가의 주인공인 자라와 토끼의 극중 역할을 놓고 판소리 수궁가의 작곡가는 표면의 주제인 충성보다는 내면의 주제인 기지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왕이나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나 신(종교)에 대한 관념적인 순응보다는 인간의 삶 자체나 개인의 자유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시대정신이 깔려 있다고 해석된다. |